1
조방로 10번길
저녁을 때울까 말까 망설이다
간판만 보고 문을 연
소문난 식당 열 몇 자리 4인용 테이블에
단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던 중노년 사내들이
일제히 나를 본다
냉소적인
체념하는
습관적인
짜증내는
무덤덤한
오만 군상
거울을 보는 것 같다
나도 저들처럼
초라하고
늙고
힘없고
불안하고
조급한가
스틸 컷에서 해동된 아저씨들은
저마다의 입안 음식 냄새 흘리며
하나둘씩 고개를 돌린다.
입시학원 모드
강사자리에 우뚝 솟은 TV는
요양병원 위치 그대로다
열심히 필기라도 하듯
그릇에서 입으로
노 젓는 소리 그 흔한 스마트폰 보는 이도
거짓말처럼 한 명도 없다.
홀린듯 바라보는 화면엔
꽃다운 나이에 사라져간
이태원 참사 책임공방과
분단후 처음으로 미사일 도발을
했다는 북한 성토 날선 가슴위에
염산 한 바가지 뒤집어쓰고
녹아내리는 기분이다. 난
앉지도
나가지도 못한채
한참을 그 식당 입구에 서있었다. 주방 아줌마가
차갑게 지켜본다.
넌 어쩔라꼬? 2
나이가 한참 들어서야
'페르 귄트 조곡'의 페르 귄트가
국가 장례식 때면 늘 나오는 음악
'오제의 죽음'을 만든 작곡가도 아니고
조곡이 장례음악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그가 곡으로 완성시킨
>페르 귄트<는 극작가 입센의 동명 희곡
주인공 이름으로 그는
원래 부농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재산을 탕진하고 집안을 몰락시킨 아버지
가난을 함께 견뎌야 했던 병약한 과부 어머니
천성이 게으르면서도 미래는 잘될거라 큰소리치던
허풍쟁이 몽상가인 그가
돈과 모험을 쫓아 온세계를 떠돌며 방랑하다
사랑하는 여인 솔베이그를 만나지만
어머니 오제의 임종후
다시 방황하며 먼 바다로 떠났다가
노쇠하고 비참한 모습으로 고향으로 돌아와
그때까지 자신을 기다리는 여인의 품에서
죽는다는 내용이다. 가장 슬픈건
어머니의 죽음이다.
노쇠하고 비참한 모습으로
고향으로 돌아가도
자신을 기다리며 나의 영혼을 거두어줄
사랑하는 여인은
어머니 말곤 없기 때문이다. 솔베이그는
이미 이태원에서
압사 당한지 오래다.
더 이상
패어 귄트에게
감미로운 아침은 없다. 그저 오제의 장송곡이
흐르는 저녁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