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배우러 간 탱고 클래스
나우라는 땅게라의 닉네임 이야기를 하다
동석자에게서 우연히 그의 소식을 들었다.
친구.
고등학교 2, 3학년 동창.
사립초등학교, 부유한 집안에
아버님이 육성회장이 되셔서
반장자리도 내신순위도 다 내어주었지만
어찌 모였는지 모를 4명이
지금 생각하면 오그라드는
각 자 인생의 좌우명을 내어 모임도 만들었었다.
Sincerity, Intelligence, Enthusiasm & Love
우리가 정말 친구였을까?
서울로 대학진학한 후
난 왜 그랬는지 전화 한통화 안했었다.
20년이 지난 후 우리가 만난 건
서면 어느 거리
독일생활에서 돌아와
이유없이 길을 걸으며
모든 것이 막연했던 시절
메디컬 스트리트 큰 성형외과 ’나우‘
뭔가 철학적이면서도 단순한
이름의 그의 병원 앞에서
우린 다시 만났다.
우리가 반가웠던가?
담에 밥 한 번 먹자는 상투적인 인사.
고교졸업 20주년 홈커밍데이,
동네 골프연습장... 또 서면
그렇게 몇 번을 스칠
때마다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밥 한번먹자!
그러던 어느날
그도 병원도 사라졌다.
아무도 소식을 아는 친구가 없었다.
누군 이민갔다고하고
누군가는 캐나다로 늦은 유학을 갔다는 이들도 있었다.
작년에 넷 중 한명이 먼저 세상을 떠났을 때
그 친구의 행방이 더 궁금했다.
친구의 부음을 알렸다면
그는 나와 함께 문상이라도 갔을까?
그가 자살을 했단다.
그것도 오래 전에.
내가 그를 다시 보고 싶다고 생각하기
훨씬전에.
아이도 없고
이혼도 했고
오피스텔에 혼자 살았다는데
세상을 떠난 이유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름만 들었던 그의 아버지께서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조용히 그를 보냈다고 한다.
그는 인생에서
날 친구로 생각했을까?
내가 생각난 적이 한 번은 있었을까?
한번 쯤은 술 한잔 하고 싶었을까?
알 수 없는 미안함이
또 다시 도사린다.
그의 부음이 내 가슴에 또 하나의 구멍을 만든걸
그가 좋아할까?
고2 겨울날 이었다.
당시 유행처럼 찹쌀떡 파는 다른 친구를 도와준다고
돈많은 그의 집에 데려 간 적이 있었다.
그는 내게 물었다.
다른 이들은 이런 거 팔면
불우이웃돕기 한다는데
너흰 그렇지도 않은 것 같은데
내가 왜 이걸 팔아줘야하는데?
수치심과 모욕감에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을 삼켰었다.
“우린 친구 아이가!”
“이유가 필요하나?”
“찹쌀떡 파는 니 친구가 불우이웃이다!”
우리 모임 이름에 그가 냈던 단어는
Enthusiasm 열정이었던 것 같다.
그는 나름 열심히 살았을거고
그 열정이 식었기 때문에 떠났으리라.
열정, 지성, 성실, 사랑이 없어도
삶은 삶이다.
그렇게 무심했어도
이 생애 우리가 친구였건 것 처럼!
늦은 인사로 너를 보낸다.
잘가라!
친구야!
내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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