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혁신의 아이콘 SANAA
김승남 ㈜ A Company 대표
일본의 프리츠커상 수상자들
건축의 선진성을 보여주는 지표 중 하나가 건축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프리츠커상이다. 매년 수상자가 발표될 때마다 세계가 주목하는 것은 누가 선정되었는지와 함께 왜 선정되었는지가 우리 시대 건축의 시금석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1979년부터 시작되어 올해 46년이 된 지금까지 일본 건축가가 8회(9명) 수상했고, 한국은 아직 수상자가 없다.
이 상을 수상한 일본 건축가들의 계보만 보아도 건축사의 흐름을 엿볼 수 있다. 최초 수상자인 겐조 단케(1987년 수상)는 일본 근대건축의 아버지로 전통건축을 계승하고 서양 건축을 비판적으로 수용하였으며 올림픽경기장을 비롯한 일본을 대표하는 건축물들을 수없이 설계하였고, 얼마 전 돌아가신 후미히코 마끼(1993년)는 일본 건축의 어머니처럼 부분과 전체를 통합하는 섬세한 조형미의 표본이 되었으며, 일본 건축의 대명사가 된 안도 다다오(1995)는 빛의 교회, 물의 교회, 노출콘크리트, 로코주택 등 건축 전형 제조기였다. 그 후 오늘 소개할 SANAA(2010), 공공성과 새로운 공간의 화두를 던진 도요 이토(2013), 목조건축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시게루 반(2014), 일본과 서양 건축의 문화적 가교를 놓으며 끊임없이 변화를 시도해 온 아라따 이소자키(2019) 그리고 올해 건축의 기본적인 원칙과 공동체 삶의 소중함을 일깨워준 리켄 야마모토(2024)가 이 상을 수상했다.
이들은 모두는 한 시대, 공간의 전형을 제시하며 세계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건축가들로서 그들의 작품을 보면 건축 전형의 지속적인 변화를 읽을 수 있다. 대체로 20c의 건축은 전통적인 의미에서 남성성이 강하게 표현된 크고, 강하고, 무겁고, 멋있는 뭔가 대단한 건축들이 건축 유형의 주류를 이루었다. 이러한 무거운 건축은 21c에 접어들며 파격적으로 변화되기 시작했는데 그 정점에 SANAA가 있다.
SANAA 건축의 특징
SANAA는 일본의 혼성 건축가 듀오(세지마와 니시자와)로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최초의 일본 여성, 최연소 수상이라는 기록을 세웠지만, 무엇보다도 세계가 주목하는 이유는 그들이 제시하는 기존 건축과는 다른 다소 생경하면서도 독특한 공간의 형식과 규범 때문일 것이다.
그들의 건축엔 20c 건축의 미덕이던 무거움과 거대한 서사는 사라지고 건축의 모든 영역에서 새로운 변화의 풍성한 내용이 담겨있다. 이에 그들 건축의 몇 가지 특징들을 주요 건축물과 함께 소개하려 한다.
구조(I) : 가는 기둥, 얇은 지붕 : 두께의 상실, 가벼운 건축
개인적으로 처음 접한 SANAA의 건축은 예술의 섬이라 불리는 나오시마의 페리 터미널(2006)이었다. 가장 먼저 눈을 사로잡았던 것은 너무나도 가늘어 보이는 기둥과 종잇장을 얹은 듯한 지붕이었다. 물론 전례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도요 이토의 센다이 미디어테크(2000)에도 잠복해있었고, 요시오 다니구찌의 도쿄 국립박물관 호류지 보물관(1999)에서도 감탄한 적이 있었지만, SANAA의 모든 작품에서 일관되게 보여주고 이러한 건축 요소들은 마치 발레를 보는 듯 건축물을 가볍게 만든다.
구조 (II) : 기둥, 벽, 바닥, 지붕 경계의 소멸 : 전통적인 구조 체계의 융합
스위스 로잔에 조성된 러닝 센터(2010)는 미래형 도서관이다. 4800㎡ 한 층에 칸막이 벽이나 경계도 없는 열린 공간을 펼쳐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흩뿌려놓은 것도 재미있지만, 슬라브 한판을 슬라이스 치즈처럼 울퉁불퉁 굴곡 지워, 일부는 기둥처럼 하중을 지지하고, 다른 곳은 외부 공간의 천정이나 굴곡진 바닥이 되며 이전에 본 적 없는 새로운 공간이 만들어졌다. 전통적인 기둥, 슬라브, 지붕, 바닥의 경계는 구조적으로나 공간적으로 사라졌다.
3. 평면 : 동그란 공장, 주 출입구와 중심 공간의 부재 : 전통적인 공간 질서의 전복
신기한 것은 구조만이 아니다.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2004)과 비트라 가구공장(2012)처럼 당연히 사각형이라고 생각하는 박물관과 공장은 동그랗게 생겼다. 평면을 보면 더 놀라운데, 예컨대 미술관에서 당연히 가장 중심이 되는 메인 로비는 사라지거나 축소되고, 출입구조차 여러 개로 분산되어 도시 어디서나 접근할 수 있다. 나아가 경계를 소멸시키고 탈중심, 다핵화된 공간들은 통제와 관리를 위해 중심과 주변을 분리하는 전통적 공간질서를 비웃으며 지금 같은 첨단 시대, 민주사회에서도 여전히 그런 위계가 필요하냐고 되묻고 있다.
4. 단면 : 층 구분 없애기, 입체적 공간 만들기 : 멋진 에지(Edge)를 지닌 조각 같은 건축
독일 촐페라인대학 경영 및 디자인학과(2006), 뉴욕의 뉴 뮤지엄(2007) 건물은 외관상 층수를 분별할 수 없고, 4층 밖에 안되는 오모테산도 디올빌딩(2004)은 7~8층처럼 보인다. 원래 층 구분은 한 층씩 건물을 적층하는 상투적인 관습에서 기인하는데, 내부공간이 층과 관계없이 자유롭게 입체적으로 조성되고 창문이 층간 슬라브 사이에서 독립하면 층 구분은 불필요해지고 건축물은 자유로운 단면구성에 조각과 같이 전체가 통합된 온전한 예술로 조형된다.
거기에 뉴 뮤지엄과 같이 건물 매스이 들락거리며 창출하는 테라스나 캐노피 같은 다양한 입체적 실용공간이 생겨 공간을 더욱 다양하고 풍성하게 만든다.
5. 외관(I) : 축소된 문틀, 유리, 거울 : 탈물질화, 소멸된 경계의 열린 건축
페리여객터미널, 가나자와 미술관, 랑스 루브르(2012) 등 SANAA 건축의 외관은 대부분 유리로 되어 있고,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던 두꺼운 창문 프레임조차 최소화되거나 보이지 않는다. 거기에 반사 거울 같은 벽이나 지붕, 은은하게 빛나는 금속 가구들은 내외부의 경계를 소멸시키고 건물의 표피에서 구현되는 경계와 재료의 물성까지 휘발시킨다.
6. 외관(II) : 새로운 감각의 표피 : 현상학적으로 외관의 존재 이유
또 다른 외관 처리방식은 마치 여성의 의복처럼 건축물 표면에 물성을 더하여 새로운 감각을 입히는 것이다. 다층적인 패널로 모아레 효과를 연출하는 디올 오모테산도(2003), 반투명 금속 매쉬로 감싼 뉴욕 뉴 뮤지엄, 멀리서 보면 단순하지만 가까이 가보면 다양한 곡률의 주름으로 빛을 춤추게 만드는 비트라 가구공장(2012)의 외관은 일종의 감각적인 표피로 사람들을 현상학적으로 탐구하게 만들고 촉각적인 기쁨을 선사한다.
7. 내부 공간: 무장식, 흰색 표면 : 미니멀리즘의 극치
가나자와 21c 미술관처럼 SANAA 건축에서 전시장의 벽체처럼 반드시 필요한 모든 부분은 흰색이거나 노출콘크리트 회색이다. 가구도 대부분은 흰색이거나 거울 같은 금속, 유리가 반복된다. 장식적 요소나 불필요한 색상도 거의 없다. 심지어 천장에는 조명과 설비조차 보이지 않고 최소한의 조명만 벽이나 천장 뒤에 숨어있다. 그들은 "건축이 간결해 보이지만 처음부터 이런 디자인이 나오는 건 아니다. 끝없이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 마침내 더 이상 뺄 것이 없는 상태에 이르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8. 배치 : 주변 환경 및 사회와 공존 : 공원과 같은 건축, 쉬운 건축
그들이 조성하는 건축은 자연과 사회에 녹아들어 있다. 영국 서펜타인 파빌리온(2009) 이나 미국 코네티켓주 뉴케이넌 그레이스 팜(2015)에서 잘 나타나듯 그들이 지향하는 ‘항상 공원과 같은 건축’, ‘누구에게나 열려있고, 거리에 열린 건축, 거리와 관계하는 건축, 들어가기 쉽고 나오기 쉬운 건축’이 글자 그대로 구현된 것이다.
9. 건축의 시작과 끝 : 다이어그램과 모형
SANAA 건축의 시작과 끝은 단선으로 그려진 다이어그램과 이를 입체적으로 만든 모형이다. 미국 오하이오주 톨레도의 글라스 파빌리온(2004)을 비롯한 그들 건축 대부분은 너무나 간단하고 명확한 다이어그램과 모형이 그대로 평면이 되고, MASS로 성장해서 최종 건축물과 정확히 일치한다. 이는 그들의 건축개념이 얼마나 명확하고, 이의 구현을 위한 노력의 정도를 보여주는 것으로, 얼마나 많은 노고와 대안 스터디를 거쳐 이 단순함에 이르렀는지를 생각하면 눈물이 날 지경이다.
SANAA 건축의 의미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가벼움과 열림, 탈물질, 경계의 소멸, 외피의 현상학적 재해석, 탈중심과 다핵화, 미니멀리즘 등 SANAA가 제시하는 일종의 여성적 우아함이 넘치는 건축 전형들은 과거 건축이 자랑하던 힘과 근육의 육중함을 순식간에 우스꽝스럽게 만들어 버린다.
그것은 건축가의 개성이나 취향, 유행을 넘어 구시대의 위계질서에 의문을 제기하고, 개발과 성장의 무거움에 찌든 현실적 관행에 대한 깊은 반성을 던지며, 새로운 사회질서와 라이프 스타일에 부합하는 공간 만들기에 대한 위로와 도전을 전해준다.
시대가 변한 것이다. 변하지 않는 것은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그 혁신의 최전선에 가볍고, 투명하고, 즐겁고 아름다운 SANAA가 있다는 것이 고맙다.
(끝)
부산의 도시건축관련 기사를 읽고 (0) | 2022.12.30 |
---|---|
건축답사_삼현도시건축사사무소_V (0) | 2022.08.27 |
건축답사_삼현도시건축사사무소_IV (0) | 2022.08.27 |
건축답사_삼현도시건축사사무소_III (0) | 2022.08.27 |
건축답사_삼현도시건축사사무소_II (0) | 2022.08.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