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20
도시건축포럼B 정기총회에 가기 직전
도시건축에 대한 기사를 읽고
참 아이러니한 감정을 느껴
오랜만에 두서없이 글을 남긴다.
아파트 숲에 갇힌 도시... 사람 중심 건축으로 숨통 틔워라
부산일보 >신 문화지리지 2022 부산 재발견< 14. 도시와 건축편 (정달식 기자/ 2022년 12월 20일 기사)
https://www.busan.com/view/busan/view.php?code=2022121918031757298
한편으로 생각하면 부산의 도시건축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며 조금이라도 더 좋은 공간환경을 만드는데 기여하고 싶은 기자의 진정성이 고마웠다.
충분히 공감하며 박수를 쳐주고 싶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좋은 도시건축을 생각하는 가치기준에 대해 작은 의구심이 들었다.
의구심 1. 부산이라는 도시에 대하여
기사
부산은 평지에서 산 중턱까지 천편일률적인 아파트가 도시를 온통 잠식해버려 다양성이 많이 결여돼 있으며, 정체성을 보여주는 건물이 없다고 한다. 그나마 '카페건축'이 무표정한 도심에 자극제가 되고 있어 반가울 따름이라고 한다. 도시 속 건축은 한마디로 산만하고 건물은 튀기만 할 뿐 배려나 존중은 사라진지 오래고 소통대신 불통이, 접촉 대신 접속만이 있을 뿐이라 한다. 나아가 부산 건축이 나아갈 방향은 부산의 정체성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한다. 그가 말한 정체성은 도시가 가진 역사와 고유한 문화, 자연환경적 특성이다.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한다.
의문
비판받아 마땅한 구석이 분명 많다.
하지만, 그 원인을 몇 개의 추상적인 키워드로 정리하는 것은 위험하다.
다양성의 측면에서 보자면 내가 가장 아름답다고 느낀 도시들인 크로아티아의 드브로브니크, 그리스의 산토리니, 독일의 중세도시들은 다양성보다는 집합성(일종의 통일성)이 강한 도시이고 부산은 천편일률 아파트가 도시를 잠식했다지만 부산의 아파트 만큼이나 다양한 아파트를 지닌 우리나라 도시는 드물다.
마린시티의 아파트단지와 다대포의 아파트단지가 다르고, 구글에서 서울 아파트와 부산 아파트 이미지를 검색해보면 오히려 부산이 나은 편이다.
또 정체성 타령도 그만했으면 한다.
350만이 사는 메트로폴리스에서 도시를 대표할 정체성을 찾는 것은 미국이나 중국이 통일된 국민성 이야기하는 것 같다.
역사, 고유한 문화, 자연환경적 특성이 남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는 도시는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그런 거로는 부산건축이 나아갈 방향이 안된다는 말이다.
내 생각에는 기자는 부산이라는 지금의 도시건축이 마음에 안드는 것이다.
뭔가 천편일률 획일적이면서도 부조화하고 산만한... 그게 맘에 안드시는 건 알겠는데...
그렇다고 꺼내든 바로 그 키워드 '정체성', '다양성' 뭐 이런 것들이 사실 바로 그 부조화의 주범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부산다운 건축지침', '부산다운 건축상'...
모두 그런 키워드로 도시를 살려보겠다는 충정으로 자아낸 결과가 지금의 우리가 보고 있는 도시의 모습이다.
의구심 2. 지금의 마음에 안드는 도시가 만들어진 원인에 대하여
기사
도시 곳곳이 건축주의 욕망이나 자본에 굴복해 버렸다고 이야기한다. 해안가는 높은 건폐율과 용적률을 향한 열망으로 하늘 높이 솟아있다고 한다. 주위와의 조화는 크게 신경쓰지않는다고 한다. 주변과 단절돼 있거나 서로를 배척한 채 각자의 존재감을 뽐내며 우뚝 서 있고 건물은 튀기만 할뿐 배려나 존중은 사라진지 오래라 한다...(생략)
의문
기자는 정말 착한 것 같다. 순진한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상식적이지 않고,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 같다.
대부분의 건축주들은 범법자가 아니다. (간혹 아닌 경우도 있지만)
건폐율과 용적률 뿐만 아니라 어떤 법을 위반하면 건축허가가 안나거나 난다해도 나중에 밝혀지면 더 큰 책임을 져야 한다.
건폐율이나 용적률이 높은 건물은 대부분 비싼 지가를 지불한 땅에 지어진다.
거기에 적법하게 건물을 지은 건축주들을 욕망이나 자본에 굴복했다고 비난하는건 올바른 해결책이 아니다.
주위와의 조화와 단절, 서로에 대한 배려나 존중의
일차적 책임은 건축주가 지는 것이 아니다.
'공공성'은 서로 다른 이해와 욕망을 가진 이들이 공존할 수 있도록 하는 공공의 의무이다. 그러려고 정부를 세우고 제도와 법을 만드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법은 공동체 문화와 의지의 총아이자 최후의 보루이다.
누군가(공공)가 본의건 아니건
모두가 공생할 수 있는 제도와 법을 잘 못 만든것이다.
누군가가 그린벨트를 함부로 해제하고, 오랜 문화유산을 훼손한 것이다.
누군가는 아름다운 해안가 조성을 위해 건축물 높이 제한 규정을 만들었지만 어느 대학교수나 시정 연구기관은 그것을 해제해야한다는 연구결과를 냈고 언론은 모르거나 알면서도 광고주앞에 굴북하고 침묵한 것이고 그렇게 전문가에서 일반 시민에 이르기까지 부끄럽지만 지금의 무질서를 묵인하고 협조했던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이들은 정해진 제도와 법을 지키며 건물을 높게건 낮게건 자기마음대로 지어야 한다.
따라서 건축주가 욕심을 안냈다고 칭찬받을 일이 아니고
욕심을 내고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우뚝 섰다고
비난해서는 안된다.
참고로
나 역시 부산을 대표하는 건축물의 하나로 꼽고 싶은 '오륙도 가원'은 자연이 지닌 지형 지세를 최대한 살리고 거기에 인공의 요소를 최대한 절제한 부산다운 건축상에 가장 부합하는 건축물이라고 칭찬하지만 그 땅은 자연녹지지역에 문화재보존영향 검토대상구역이라 11m이상은 못짓게 되어있는 땅이기 때문에 짓고 싶어도 더 높이는 못지은 것이다.
그 건축물을 건축적 세밀함이나 완성도로 칭찬하는 것은 타당하지만 그 규모나 주변과의 조화는 건축주의 욕망이나 착함과 큰 상관없는 것이다.
의구심 3. '도시의 빛'과 같은 좋은 건축물의 기준에 대하여
기사
같은 맥락으로 기자는 의미있는 부산의 건축들을 소개한다.
복지시설의 고정관념을 깬 '수국마을': 새로운 기숙사 유형 제시
폐교를 리모델링해 놀랄만한 공간 변신을 가져온 '알로이시오기지 1968':
건축주, 사용자와의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 오래된 학교건물을 완성도 높은 재생공간으로 탈바꿈
사용자에 대한 배려가 돋보이는 건축
기업이 가진 것을 지역 사회에 어떻게 잘 드러낼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흔적과 그 방향성을 잘 읽어낸 '키스와이어센터'
기장의 '임랑문화공원(박태준 기념관), 영도의 '아레나식스'도 비슷한 범주
'구. 백제병원', 'F1963' 모두 도시가 가진 정체성을 계속 이어 나가려고 노력
세대별로 각각 다른 모양을 보여준 '모여가 주택'
세대별 마당이 있는 집을 선보인 도심형 생활주택 '레지덴스 엘가':
'크리에이티브센터'는 전통 건축과 현대 건축의 조화
'문화 골목'은 쇠퇴해 가는 지역에 새롭게 의미를 부여해 활성화
문화라는 상큼한 공기를 도심 골목에 불어넣었다. 폐건축자재를 재활용해 향후 부산이 지향해야 할 도시재생의 모델을 제시
의문
기자가 소개한 대부분은 나 역시 좋아하고 훌륭하게 생각하는 건축물들이다.
내가 의구심을 제기하는 것은 그 건축물들이 선정된 이유 때문이다.
기사처럼 우리는 복지, 리모델링, 재생... 어찌 이리 착한 건축기준인지...
기업이 지역사회를 위한 고민과 흔적... 이 부분은 좀 닭살돋는다.
도시가 가진 정체성을 이어나가려는 노력... 국뽕(부산뽕)이라도 차올라야 하나!
이런 기준들도 다 좋지만 착하다는 것이 의미있는 건축의 일차적인 기준은 아니라는 것이다!
몇 년전 설문조사에서 건설협회가 선정한 우리나라 최고의 건축과 비슷한 것이다.
대부분은 63빌딩, 무역센터, 예술의 전당, 올림픽 경기장, 국회의사당, 세종문화회관, 독립기념관 등
크고, 높고, 비싸고, 최초,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하는 건물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건물들이다.
그들의 기준으로는 그게 훌륭한 건축물이다.
나름 기준은 있겠지만 단지 건축주가 착하고... 욕심을 덜 내고... 사회에 공헌하고... 그런 분들에겐 공공에서 상이나 포상을 해드려야 하지만 건축적 기준은 아니다.
건설협회 설문 당시 건축가들에게 설문조사한 결과는
선유도공원, 공간사옥, 쌈짓길, 출판도시, 웰콤시티 등 이었고 워스트 건축물로 광화문광장, 청계천, 예술의 전당, 독립기념관, 대전 월드컵경기장 등이 지목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기자가 이야기한 도시의 삶은 근본적으로 함께 살아가기, 인간적인 커뮤니티, 공존과 배려의 지혜
다 훌륭한 이야기지만 건축은 보다 건축적인 기준으로 판단되어야 하는 것이다.
예컨데, 오늘 기사에서도 훌륭한 기준들이 제시되었다.
'새로운 유형과 모델'의 제시가 그것인데 건축의 새로운 전형을 제시하는 것은 역사책에 남을 만한 훌륭한 기준이 될것이다.
다만, 그 건축물이 전형을 남겼는지는 지켜보아야 한다.
어느 예술작품이건 상품이건 ‘새로운 전형’은 수많은 영향과 짝퉁을 양산한다.
그것이 좋아보이기에 따라하는 것이고,
그런 식으로 공동체의 삶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그렇지 못한 유형, 모델은 ‘전형’이라기 보단 ‘실험’이라고 부르는 것이 타당하다.
부산에도 잘 찾아보면 그런 전형을 제시한 건축이 없지 않다.
그리고 건축적으로 의미있는 건축물은
하나도 안 착해도 주위에 감동을 줄 수 있다.
구지 정체성이니 다양성이니 그런 타이틀도 필요없다.
그건 따로 고민해야할 부분이 더 많다.
아름다운 여인이나 상품, 디자인, 도시 모든 것이 그러하듯...
그것이 무슨 이유건 전문가건 일반인이건 누구에게 건
좋은 건축, 감동받을 수 있는 건축물을 만드는 것이
건축가가 최선을 다해야할 몫이고
그 감동의 이유는 너무나 복합적이고
사례마다 구체적이다.
감동적인 노래의 이유가 다 다르듯이...
결론
왜 이렇게 훌륭하고 고마운 기사에 의구심을 제기하고 시비를 거냐고?
년말에 훈훈한 분위기도 좋지만
바로 이런 두리뭉실함과 욕심많은 놈이 나쁜놈,
우리 모두 착하게 살자! 식의 구호는
문제의 본질을 흐릴 수 있기 때문이다.
착한 건축주와 선한 건축가의 개별 건축물을 통한 도시의 변화를 꿈꾸기 보다는 우리가 마음에 안드는 도시를 만들고 있는 잘못된 도시의 제도와 시스템 부터 고쳐야 한다.
정확하게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해
보다 전문적이고, 냉철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착한 건축, 상받는 건축, 우리모두 으쌰 으싸... 화이팅... 뭐 이런 것도 좋지만 본질적인 건축의 문제는 그 어떤 사회적 윤리적 이유보다 건축적으로 이야기해야 한다.
도대체 나에게 이 건축물이 왜 좋은지
그리고 우리 공동체에게 이 건축물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보다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필요한것은 정치적 담론의 장도 중요하지만
보다 건축의 본질적 특성과 문제가 중심이 되는 담론이 펼쳐지길 기대해본다.
이런 글을 다시 쓰게 해주신 기자님의 기사에 감사하고
제 의견에 너그러운 이해를 구하며... 좋은 기사 많이 써주시길
기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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